행파 선생님 영전에 올립니다.
행파선생님!
지금 저의 마음은 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자리가 白壽 축하 자리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무엇이 그리 급하시다고 이리 홀연히 저희를 버리고 떠나십니까.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저희들에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바른 길'을 꼿꼿한 자세와 명확한 어조로 일러 주셨던 분이기에 영전에 조사를 올리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것을 믿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꿈이라면 좋겠습니다.
94세 되신 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언행도 당당하게 확실한 가르침을 베푸셨던 행파 선생님은 진정 이 시대의 참 어른이셨습니다.
그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주옥같은 가르침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슬프고 참담합니다.
지난 10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전갈을 받고 서둘러 병실로 찾아 뵈었는데, 제 손을 아주 힘세게 꼬옥 잡고는 병석에 누워계신 분답지 않게 매우 또렷한 목소리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해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옥음이 워낙 쟁쟁하셔서 좀 더 오래 버티실 줄 알았는데 이리 홀연히 떠나시다니 더욱 허망합니다.
주지하는 바, 선생님께서 사셨던 시절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큰 사람이 절실히 요구되는 다사다난한 시대에 태어나 시대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처럼 이 나라를 선두에서 이끄셨습니다. 가시는 곳 마다, 계시는 곳 마다 문자 그대로 신화적인 성취를 이루셨으니, 진정 시대의 한 획을 그으신 분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크나큰 어른이십니다.
선생님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이곳 영해에서 전통 선비가문의 종손 되실 분으로 태어나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습니다. 이 때 배운 '남에게 밑지고 살고 져주며 살아야 된다'는 할아버지의 무릎팍 교육이 선생님의 ’평생 指南‘이 되었다고 종종 말씀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워낙 영민하셨던 선생님은 검정고시를 거치고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하셨고, 이후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셨습니다. 중장년에는 더 큰 꿈을 품고 미국 유학을 마친 뒤에 과학자로 또 벤처기업인으로 우리나라가 정보기술로 IT강국이 되어 세계를 이끌 수 있도록 선각자의 역할을 당당히 이루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삼보컴퓨터에서 물러나신 뒤에는 ‘성적보다 인성이 먼저다'라 설파하시며 훌륭한 사람을 만들고자 박약회 일에 매진하셨습니다. 어린 학생부터 청소년, 교사, 학부모, 군인에 이르기까지 인성교육에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되자'는 가르침을 시대의 화두로 내 걸 수 있었음은, 어릴 적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더하여 선생의 삶에서 체득된 향기로운 지혜가 묻어난 결과였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전국을 힘차게 다니면서 인성교육에서 실천이 중요함을 강조하셨는데 수강자만도 무려 120만 명을 상회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퇴계선생을 존모하시며 사셨기에 퇴계학 연구원과 국제 퇴계학회 이사장을 여러 해 동안 역임하셨을 뿐 아니라 제가 지금 봉직하는 도산서원 원장과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도 이미 하셨으므로, 도산서원과 선비문화수련원에 각별한 격려와 뜨거운 성원이 한결같으셨습니다.
2013년 가을 저희 수련원 숙야재에서 주무셨을 때, 새벽 산책에 제가 선생님을 모시고 퇴계 14대손 청하 이육원님과 함께 도산에 올라 서원까지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도산재에 일던 바람과 새 소리를 지금도 기억합니다만, 마침 그 정경을 그린 시가/ 행파 한시집에 있기에, 30행의 긴 율시 중 말미의 4행으로 선생님의 소회를 다시 나누고자 합니다.
移風易俗眞不易(나쁜 풍속이 좋은 풍속으로 바뀜은 참으로 쉽지 않으니)
何以復興鄒魯鄕(어떻게 하면 다시 추로향을 부흥시킬꼬)
博約會與修練院(박약회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盡心戮力務弘匡(마음을 다하고 힘을 쏟아서 널리 바로잡음을 힘써 보세)
몇 해 전 불초 저에게 '퇴계선생을 지극히 존숭하여 그 분을 연구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라고 과분한 칭찬을 하시며 ‘퇴계선생의 언행을 본으로 삼고 실천하여 수련원을 찾는 어린 학생부터 공무원, 기업인들에게 선비정신을 일깨우는데 심혈을 기울여 달라’하시던 당부 말씀을, 병실에서 잡아 주셨던 선생님 손의 따스한 감촉과 함께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처럼 정제 엄숙한 태도로 매사에 공경하며 살겠습니다.
이제 500년 전에 퇴계선생 부음을 당하여 스스로를 隣侍라 하며 만사를 지으셨던 벽오 이문량 선생의 글로 지금 저의 참담한 심사를 아룁니다.
此生不虛過 餘波之所被(내 인생 헛되지 않음은 당신을 만났음이라)
제 인생에서 행파 선생님을 뵈온 것은 정말 좋은 인연이요 롤모델을 얻는 큰 기회였습니다. 선생님과의 '만남과 기억'을 각골 명심하고 이웃에서 모시는 侍者로, 선생님을 모델로 배우는 後學으로 처하며, 모진 世波 앞일지라도 선생님의 바람이 결코 스러지지 않고 계속 창대하도록 굳건히 지켜 드리고자 합니다.
We'll Remember You!
저희는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 ·
隣侍 김병일. 선생님 영전에 삼가 곡하며 절 올립니다.
출처 : 안동인터넷뉴스(http://www.adi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