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PC산업의 가능성을 멀리 내다보고 삼보컴퓨터를 설립, 국내 최초로 PC를 개발함으로써 우리나라의 PC산업을 열고, 그후 데이콤 사장 시절 행정전산망 사업의 성공적 수행과 두루넷 설립을 통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국내 최초 개시 등 한국 IT산업이 오늘에 있기까지 이를 이끌고, 지난 2000년대 초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신 후에는 박약회(博約會)를 통해 인성교육에 매진, 우리나라 인성교육의 기틀을 마련하신 이용태 회장님께서 지난 14일 별세하셨습니다. 국내 언론들이 일제히 '한국 PC산업의 선구자', '한국 PC 산업의 아버지', '한국 IT산업의 대부', '한국 IT산업의 거인' 등으로 칭하며 이 회장님의 별세 소식을 전했으며, '한국 IT 산업의 큰 별이 졌다'고 이 회장님의 별세를 슬퍼하였습니다. 또한 유교적 인성교육을 선도한 이 회장님의 업적도 부각되어 소개되었다.
아래는 별세 당일 수 많은 언론 기사 중 경향신문과 매일신문에 실린 별세소식 입니다.이 회장님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경향신문)
‘국민 PC’로 인기…해외 진출도
일선 물러난 뒤 인성교육 힘써

국내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는 등 한국 정보기술(IT) 산업 선구자로 꼽히는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33년 경북 영덕군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연구원, 한국전자기술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컴퓨터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본 이 회장은 1980년 자본금 1000만원을 들고 삼보컴퓨터의 전신 삼보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이듬해 삼보엔지니어링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품화된 개인용 컴퓨터 ‘SE-8001’을 출시했다.
1982년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애플2 컴퓨터의 호환 기종인 ‘트라이젬20’을 생산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트라이젬20의 성공은 금성사(현 LG전자),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 대기업의 PC 시장 진출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1982년 한국데이터통신주식회사(데이콤) 초대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청와대가 데이터통신 사업을 전담할 회사를 이끌 적임자로 이 회장을 낙점한 것이다.
1990년대 삼보컴퓨터는 대표적인 토종 IT 기업으로 도약했다. 삼보컴퓨터는 한때 ‘국민 PC’로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중국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다.
고인은 ‘초고속 인터넷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1996년 한국전력과 함께 두루넷을 설립해 국내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에 나섰다. 두루넷은 1999년 나스닥 시장에 상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경쟁 업체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삼보컴퓨터와 두루넷은 경영난에 빠졌다.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유림 단체 ‘박약회’에서 회장으로 활동하며 인성 교육에 힘썼다. 2016년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장남 이홍순 삼보컴퓨터 고문, 차남 이홍선 TG나래 회장, 장녀 이한경, 차녀 이경순, 삼녀 이임순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8일 오전 7시다.
(매일신문)
한국 IT산업 선구자·유교적 인성교육 선도, 이용태 박약회장 별세